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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管鮑之交) 고사성어 관중과 포숙의 참된 우정

by 쉼4S 2022. 8. 23.

우정을 표현할 때 죽마고우만큼 자주 사용하는 고사성어로 관포지교가 있습니다. 관포지교는 중국 제나라 때 재상이었던 관중과 그를 재상으로 천거했던 포숙의 우정으로부터 유래한 고사성어입니다. 허물없는 두터운 우정을 나누는 친구사이를 가리켜 관중과 포숙의 사귐, 관포지교라고 표현합니다.  

 

 

 

관포지교(管鮑之交) 고사성어 관중과 포숙의 참된 우정

 

관포지교

 

관중이 말하기를,

내가 가난할 때에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였는데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했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管仲曰, 吾始困時, 嘗與鮑叔賈, 分財利多自與, 鮑叔不以我爲貪, 知我貧也.

 

내가 포숙을 대신해 사업을 하다 실패하여 더 어렵게됐으나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았다. 세상 흐름에 따라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吾嘗爲鮑叔謀事而更窮困, 鮑叔不以我爲愚, 知時有利不利也.

 

내가 벼슬길에 나갔다가 매번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吾嘗三仕三見逐於君, 鮑叔不以我爲不肖, 知我不遭時也.

 

내가 싸움에 나가 세번 모두 패하고 도망쳤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吾嘗三戰三走, 鮑叔不以我爲怯, 知我有老母也.

 

공자 규가 졌을 때 소홀은 죽었으나 나는 붙잡혀 굴욕을 당하는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公子糾敗, 召忽死之, 吾幽囚受辱, 鮑叔不以我爲無恥, 知我不羞小節而恥功名不顯於天下也.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포숙은 관중을 추천하고 자신은 그의 아랫자리에서 일했다.  포숙의 자손은 대대로 제나라의 녹을 받고 봉읍을 십여 대 동안 가졌으며 늘 이름 있는 대부로 알려졌다. 

 

鮑叔旣進管仲, 以身下之. 子孫世祿於齊, 有封邑者十餘世, 常爲名大夫.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포숙을 더 칭찬하였다. 

 

天下不多管仲之賢而多鮑叔能知人也.

 

< 사기(史記) - 관안열전(管晏列傳) > 중에서

 

 

 

유래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산둥성 일대에 있었던 제나라(BC 1123~ BC386)의 왕 희공에게는 제아, 규, 소백 3명의 아들이 있었다. 소백을 섬기던 포숙은 죽마고우인 관중을 규에게 추천하여, 관중은 규를 섬기게 되었다. BC697 희공이 죽고 첫째 아들 제아가 왕위를 이어 양공이 되었다. 양공의 폭정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규는 관중과 함께 노나라로, 소백과 포숙은 거나라로 망명하였다.

 

무지는 반란을 일으켜 사촌 형 양공을 죽이고 제나라의 왕이 되었지만 그 또한 폭정을 일삼아 죽임을 당했다. 왕좌를 두고 규와 소백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귀국하던 소백을 암살하기 위해 관중이 쏜 화살에 소백은 부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목숨은 구하였고 제나라로 돌아와 왕좌를 차지했다. 그가 춘추시대 5인의 패자 중 한명인 제환공입니다.

 

환공은 규를 죽이고 규의 수하인 관중도 죽이려고 했으나 제나라에 만족한다면 자신만으로 충분할 것이나 천하의 패자가 되고자 하신다면 관중을 등용하라는 포숙의 진언을 듣고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관중을 재상으로 삼았다. 

재상이 된 관중은 군사제도를 정비하고 여러가지 개혁정책을 실시하여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의 생활을 개선시켰다. 

 

산
관포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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